'여행을 꿈꾸다' 블로그를 개설한 이후 새로 작성된 글을 가급적 존대말로 작성하였습니다. 반말로 작성된 글은 대부분 이 블로그 개설 전에 썼던 글을 옮겨온 것들입니다. 개인적 독백 위주인 저쪽편 제 다른 블로그에 비해 이곳에서는 여행정보 등을 얻으러 올 손님이 많다는 판단이었죠. 하지만 열흘간의 카미노 순례기 만큼은 왠지 독백 형식으로 정리하고 싶었습니다. 왜인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만 -_-; 그냥 그러고 싶었어요.

이제 도보순례를 마친 다음 이야기를 시작할까 합니다. 2008년 8월 4일부터 13일까지 총 열흘간 카미노를 걷고 나서, 8월 14일, 8월 15일을 카미노 순례자가 아닌 여행자로서 산티아고에서 지냈습니다.

8월 14일 목요일

저는 아침잠이 많은 사람입니다. 그간 카미노에서 부지런한 일행들 따라 꼭두새벽에 일어나느라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이날 마음놓고 푹 잤고 일어났더니 아침 9시 반이네요. 평소 같으면 벌써 아침식사도 마치고 10km째 걷고 있을 시간인데 이제 눈을 뜨다니... 기력이 충전되는 느낌에 행복합니다. ^^

열한시 좀 넘어서, 전날 네이버 카페에 예고한대로 Cafe-Bar Obradoiro라는 광장 바로 입구 카페에 앉아 순례자 미사에 같이 갈 한국인 기다렸으나, 아무도 못만나고 그냥 일어서야 했습니다. 뭐, 상관은 없습니다. 어차피 숙소가 그 카페 위층이라 카페에서 아점으로 때운거거든요.


'아점' 혹은 '브런치'는, 카페콘레체, 또르띠야(계란요리)를 시켰습니다. 메뉴에는 한판 값이 써있던 건데, 점원이 알아서 1/4조각만 갖다주고 값도 싸게 받네요. 멋모르고 시켰던 저는 한 판 다 내왔으면 먹지도 못하고 남길 뻔 했지요. 더욱이 빵은 공짜네요. 이렇게 고마울데가... 식사를 마치고는 바로 앞 산티아고 대성당에 들어가 정오 순례자 미사에 참석했습니다.



미리 알고 있던 바로는, 미사 중에 그날 오전까지 도착한 순례자 명단을 불러 준다기에 귀 기울여 들었습니다. 순례자 개인의 이름은 안불러주지만 순례 출발도시와 국적과 사람수를 불러주는데, 이상하게도 "포르투에서 출발한 한국인 한명"을 못 들었네요. 순례자 미사에서 부르는 명단은 과연? 당일날 오전 도착한 사람만 집계하고 전날 오후 도착분은 빠지는건지? 여하튼 좀 아쉬웠습니다. 하지만 좋았던 것은, 특별한 날에만 움직인다는 날아다니는 향로가 움직였다는 것입니다. 왜 오늘 움직이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위 사진 가운데 은색 향로가 끈에 매달려 휙휙 날아다니는데 볼만했습니다. 이 다음날인 8월 15일은 성모승천대축일이라는, 가톨릭 교회에서 기념하는 대축일 중 하루여서 그런지 또 향로가 움직였거든요. 이틀 연속으로 본 셈입니다.

여튼, 이렇게 순례자 미사까지 참석했으니 정말로 카미노를 마무리 한 기분입니다. 이제는 본격적으로 여행자 혹은 관광객이 될 차례이지요! 미사 끝나고 나와 근처에서 포르투 이후 열흘만에 처음으로 한국말을 들었습니다. 한국인 중년 여자분 셋을 스쳐지나갔는데 말 할 기회는 없었지만 반가웠습니다.


전날 묵은 숙소가 너무 낡아서 Bar La Tita라는 식당 위 호텔로 옮겼습니다. 가격은 20유로로 비슷한데, 전날 묵은데보다 중심지에서 약간 떨어진 대신에 욕실과 방이 더 깔끔하고 좋았습니다.


점심은 근처 카페에 혼자 않아서 보카디요를 먹었지요. 내 마음대로 아무데나 들어가서 먹으면 된다는 것은 좋지만, 일행이 있을때 처럼 세밀한 주문은 불가능합니다. 메뉴판 보며 대충 눈치로 초리소, 레추가, 토마떼 넣어 달라고 시켰더니 다행히 양상추와 토마토 넣어서 잘 나옵니다. 카페 야외자리에 앉아있는데 바로 건너편 길가에 바이올린/첼로 협연이 벌어지고 있는데 참 듣기 좋았습니다. 다 먹고 일어설 때 1유로라도 보탤까 싶었는데 그 전에 일어나시더만요. 이런식의 길거리 공연이 참 많아 즐거웠습니다. 중간에 지나가던 다른 순례자가 합석하여 잠시 이야기 나누었습니다. 벨기에인과 네덜란드인 순례자였는데 당연히 프랑스길을 걸었더군요. 같은 순례자들이라 짧지만 반갑고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그들과 인사하고 다시 산티아고 골목을 혼자 걸어다니는데, 가족생각이 참 많이 났습니다. 특히 유모차나 애기들이 어찌나 눈에 들어오던지... 현관문에 서서 딸과 작별인사 하던 순간이 생각났습니다. 아빠가 여행가니까 며칠 못볼거라는 말에, 아직 여행이 뭔지도 모르는 20개월 딸내미가 "지효도 여행!"이라며 아쉬움을 표현하던 모습이 아른거립니다. 이제 삼일 후면 한국에 돌아가서 만나겠지요?

산티아고의 어느 골목

원래 쇼핑 즐기는 사람은 아니지만 몇가지 간단한 기념품 쇼핑을 해봤습니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상징하는 티셔츠 몇 벌, 조개 목걸이, 십자가 목걸이, 기타 팔찌. 뱃지 등등... 대성당에서는 어머니 드릴 묵주도 샀구요. 묵주야 많으시지만 그래도 아들이 도보성지순례 마치고 사온 묵주라니 좀 특별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순례길과는 상관없지만 꼭 사고 싶었던 것을 하나 삽니다. 5.50유로짜리 모카포트. 3인용이라 크기는 작습니다만, 이만한 것도 한국에서는 3~4만원 이상 하니까요. 이제 집에서도 싼 돈으로 에스프레소를 즐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_^

Quintana 광장

오브라도이로 광장에서 성당 건너 뒷편에는 Quintana 광장이 있습니다. 종종 이런저런 공연이 벌어지는데 특히 위 사진의 판토마임이 벌어질때는 한참을 앉아서 구경할만큼 재미있었네요.

저녁시간이 가까워져 슈퍼에 음식을 사러 들렸는데, 장보다가 젋은 한국인 자매를 만났습니다. 한국말을 스쳐 지나가기는 몇번 했는데 이렇게 딱 마주치기는 처음이었죠. 너무 반가워서 이야기 좀 나누다 저녁식사 같이 하기로 했습니다. 어디서 먹을까 식당가를 다니다가 케밥집에 앉아계신 다른 한국인 순례자가 부르셔서 합석했습니다. 학교 선생님이신데 이 자매와는 이미 지나가다 만는 사이였지요. 맥주 두잔에 되네르 케밥을 맛있게 먹으며 열흘만에 한국말로 대화하며 즐겁게 시간을 보냈습니다.


8/14(목) 쓴 돈
===================
간식 6.00유로
헌금 2.00유로
점심 보카디요 3.90유로
숙소 20.00유로
슈퍼 4.21
저녁 케밥 13.00유로
===================
합계 49.11유로
- 단, 물건 사느라 쇼핑한 돈은 제외입니다.


8월 15일 금요일

또 마음껏 늦잠을 자고 10시에 일어났지요.

아침은 숙소에서 전날 슈퍼에서 장 본 것으로 싸게 해결합니다. 선진국들이 대개 그렇지만 스페인이나 포르투갈 역시 슈퍼에서 식재료 파는건 엄청 저렴한데 식당에서 서빙받으며 식사하는건 훨씬 비싸지요. 특히 포르투갈은 1인당 GDP같은걸로 따지면 우리나라와 큰 차이 없는데 또 이런면에서는 여타 선진국이랑 같습니다.

여튼 싸게 산다고 샀던 0.99유로짜리 토스트 빵은 너무 맛이 없습니다. ㅠㅠ 하지만 구세주는 야채참치! 스페인말로 참치 샐러드라 쓰여있어 샀는데 저렴한 가격에 맛도 한국에서 먹던 야채참치 캔과 비슷해 익숙하네요. 값도 불과 0.89유로! 또한 순례중 일행과 먹던거 생각나 절인 올리브를 조금 샀는데, 0.36유로라니, 역시 지중해 국가 답습니다.

12시 순례자 미사에 또 참석합니다. 성모승천대축일이라 의무축일이죠. 11:30에 들어갔는데도 자리없이 사람이 가득해서 서있었네요. 가마에 뭔가 태우고 행진하는게 역시 대축일이라 다른 듯. 물론 향로도 신나게 날아다녔습니다.

대성당을 지키고 있는 야고보 성인 (Santiago)

미사 끝나고 나오는데 광장에서 어제 저녁때 만난 선생님 마주치고 자매도 바로 만나게 되었습니다. 한국인 한 번 만나기가 어려웠지 그 다음에는 계속 마주치네요.^^ 자매가 조언해주기로 Zara라는 스페인 여성복 브랜드가 한국에서 인기있답니다. 국내보다 저렴한 가격에 아내에게 멋진 옷을 선물하겠다는 기대감에 매장을 찾아보지만, 오늘은 대축일로 휴일이라 문을 다 닫아 아쉬웠습니다. 그냥 잡다한 기념품 쇼핑을 좀 더 하다가 대성당 앞 오브라도이로 광장에 와 보니 다시 한무리의 한국인들을 마주치게 되었습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 하다가 성당 옆에 있는 럭셔리한 호텔에서 순례자에게 선착순 10명 식사를 제공한다고 한다는 정보를 들었습니다. 하루 세번, 오전 9시, 12시, 저녁7시라니 저녁식사는 먹을 수 있겠네요. 몇몇 순례자들과 재미삼아 해보기로 합니다.

한 시간 전이 6시에 아까 약속한 한국인 3명을 만나 총 4명의 한국인 팀이 줄을 섰구요, 독일인 한명, 이탈리아인 두명, 프랑스인 하나, 또 독일 이탈리아 하나씩, 순례자들이 모여듭니다. 늦게 온 몇명은 10명이 다 찼다는 말에 돌아섰구요. 호텔 입구 아래편에 있는 레스토랑 입구 옆 차 출입문에서 기다리니 7시에 관리하는 아저씨가 와서 쿠폰을 주더군요.




순례자들은 레스토랑 정문이 아니라 뒤편 주방쪽 출입구로 들어가 줄을 서서 배식을 받습니다. 아마도 직원용 식사인 듯. 그래도 그게 어디야 공짜인데! 정말 감사히 먹었습니다. 순례자 전용 방이 마련되어 있어 그 안에서 식사를 했습니다. 해물 빠에야에 국수가 들어간 수프. 와인도 한병 줍니다. 근데 자기는 해물을 먹어본 적이 없다며 손도 안 대는 유럽애들이 몇명 있네요 -_-;; 충격입니다. 안 먹는 해물 빠에야(볶음밥) 하나 가져다 한국인 네명이 나눠먹고 보답으로 제 바나나를 그 친구에게 주었습니다.

버스 터미널을 향해 걷다가 뒤돌아 본 산티아고 대성당
식사 후, 이제 아쉽지만 산티아고를 떠날 시간입니다. 버스터미널, 즉 estacion autobuses 까지는 도보로 20분 남짓 걸립니다. 가는길에 마지막 기념품으로 따르따 데 산티아고 2개 7유로에 샀습니다. 딸내미가 좋아할 모습 떠올리면서요. ^_^


이번 마드리드행 버스는 야간 버스입니다. 21:30 산티아고 출발해서 6:30 마드리드 도착할 때까지 9시간을 달립니다. 같은 버스를 타는 한국인 순례자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선생님입니다. 산티아고 순례길, 특히 프랑스 길은 워낙에 기간이 한달 이상 걸리는 코스라, 만난 한국인들 중 은퇴하신 분들과 대학생을 제외하면 직장인은 대부분 교사입니다. 물론 지리적으로도 가까울 뿐 아니라 휴가 쓰는게 자유로운 유럽의 직장인들은 직업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찾아오겠지만요.

마드리드에서의 이야기는 다음 편에 이어서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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