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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8월 8일(금) [카미노5일] Valenca - Porrino (19.8km)

포르투갈 마지막 도시인 Valenca에서 강(Rio Minho) 건너에 있는 스페인의 첫 도시 Tui를 지나 Porrino까지 진행. 어제 무리했는지 마리아나 상태가 영 안좋았을 뿐 아니라 나도 그다지 좋지 않았음. Porrino 까지 가는 길에는 큰 공단이 있어서 공장 사이로 난 차도 걷기가 지루했으나 다행히 먼 거리는 아니라 일찍 도착 후 푹 쉬었던 하루.

전날 무리해서 그런지 발렌시아 아저씨 토마스가 깨우는데도 금방 못 일어 났나보다. 정신을 차려보니 어제까지 함께 걸었던 일행들이 먼저 출발 준비를 다 하고 나가는 것이다. 아직 꽤 이른 시간인데, 너무 덥고 답답해서 더이상 못자겠다나? (실은 나중에 어떤 순례자의 코고는 소리 때문에 더 못자고 일어나 출발해 버렸다는 고백을 했다. 알베르게에서는 혹시나 상처받을 코골이 순례자가 들을까 돌려 말한 것이다. 하지만 나는 전날 피곤해서 그런지 아무 소리 못듣고 정말 쥐죽은 듯 잘 잤다.)

어제도 일행에게서 뒤쳐져 막판에 따로 걸었는데 오늘은 아예 시작부터 따로 뒤쳐지는 기분이라 조금 섭섭하긴 했지만, 카미노라는 데가 그렇지 뭐. 어차피 혼자 시작한 길, 혼자 걷다가 일행이 되기도 하고, 같이 걷다가 떨어져 걷기도 하고, 뭐 그런거 아니겠는가. 그나마 위안이 되는 독일 아저씨 귄터 왈, 스페인의 첫번째 카페에서 기다리겠단다. (다른 순례자들의 후기에서 bar 바르 라는 표현을 많이 보았으나, 이상하게 나의 카미노에서는 다들 cafe 카페라는 표현을 쓴다. 일행이 나를 위해 스페인어가 아닌 영어로 얘기를 해주어서 그런건가?)

그렇게 일행과는 십여분 가량 늦게, 혼자 출발했다. 비슷한 시간에 포르투갈인 한 무리와 스페인 순례자 한무리도 출발해서 중간중간 마주쳤다. 아직 이들과는 제대로 말을 섞어보지 못한터라 그냥 가볍게 올라~ 던져주며 계속 걸었다.

알베르게를 나와 어제 오후 헤매느라 걸었던 그 길, 국경으로 가는 길을 익숙한 느낌으로 다시 걸었다. 조금 더 가서 미뇨 강(Rio Minho)을 만나고 그곳에서는 포르투갈의 끝과 스페인의 시작을 알리는 큰 간판이 보인다. 여권 제시도 필요없고 검문도 없으며 어떠한 담장도 없이 길이 이어진 철교를 건너며 묘한 기분이 든다. 내 나라는 반도 끝에 위치한 분단국, 사실상 섬이나 다름 없는 나라에 살기에 이렇게 육로로 건너는 국경은 신기한데다, 더욱이 걸어서 건넌다니 말이다. 그렇게 강을 건너고 나서 돌아보니, 살포시 언덕에 위치한 Valenca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첫 도시인 포르투에서도 그랬고 지나오는 땅마다 모두 아쉬움이 남는 포르투갈이라는 나라. 언젠가 꼭 다시 찾아오겠다는 생각을 한다. 다음 번에는 꼭 가족과 함께 오고 싶다.


포르투갈의 끝을 알리는 간판

스페인의 시작을 알리는 간판

두 간판 사이에는 사진 뒤쪽으로 보이는 흰색 다리가 놓여있다.
스페인의 시작인 Tui에서 넘어다본 포르투갈의 마지막 Valenca가 언덕위에 보인다.

스페인 땅인 Tui에 들어서자 마자, 일행이 기다리고 있을 카페를 찾지만 첫번째 만나는 카페는 문이 닫혀있고 두번째 만나는 카페에는 손님이 아무도 없다. 혹시나 순례자들이 오지 않았냐는 질문에 아무도 없었다는 허무한 대답. 결국 포기하고 그냥 카미노를 계속 걷는다. 만날 인연이면 언젠가 다시 만날 것이고, 또 새로운 인연을 만날 좋은 기회도 될 것이다.

곧 Tui 중심가가 나온다. 원래 계획이었다면 전날 Rubiaes 까지만 가고 이 날은 Tui에서 잤겠지? 중심가에 있는 대성당에서 도장을 받으려 했으나 어디서 받을지 알 수 없었다. 이른 아침이라 사람이 없는 듯 했다. 일행을 만나면 먹으려 했던 아침을, 대성당 근처 카페에서 혼자 먹었다. 토스트에 카페콘레체 한 잔이 2유로. 국경을 넘으며 물가가 약간 올랐다. 아무래도 포르투갈에 비해서는 다소 소득수준이 높은 스페인이라 그런듯.

Tui 대성당에 있던 승천하는 성모와 천사상

Tui 구시가지와 대성당

토스트와 커피로 아침식사를 해결한 어느 길가 카페

순례자들이여 Bom Caminho!
스페인어도 아니고 포르투갈어도 아닌 이상한(?) 말이 쓰여있다.
바로 스페인 갈리시아 지방에서만 쓰인다는 갈리시아어!


Tui 도심을 벗어나 한적한 곳의 어느 갈림길. 저쪽에 엉뚱한 길에서 카미노를 향해 걸어오는 한 무리의 순례자가 보인다. 저런, 아침에 나보다 먼저 출발한 어제 그 팀인데 길을 헤매다가 되돌아 오는 길이란다. 이런 곳에서 다시 만나다니! "스페인 첫 카페에 없던데요" 그랬더니 문 연 곳이 없어서 대성당 앞 카페에서 기다렸단다. 카미노 길위에 있는 곳이라 당연히 만날 줄 알았단다. 하하, 당연히 만날 줄 알았던 곳에서는 못만나고 이렇게 얘기치 못한 곳에서 만나다니 참 세상 일이 사람 뜻대로만은 안된다. 그렇게 인연이 닿아 재회한 일행과 다시 Porrino까지 계속 걸었다.

Tui에서 Porrino까지는 한참 동안 공단 사이 길을 가게 된다. 가도 가도 끝이 없어 보이는 공장들, 그 사이로 난 일직선의 아스팔트 카미노. 지루하고 재미없는 구간이다. 그나마 같이 얘기하며 걸을 수 있는 일행이 있어 다행이다. 그간 눈인사만 했던 다른 스페인 순례자 그룹과도 겹쳐져 걷게 되어 짧게나마 말을 섞게 되니 그것도 좋다.

드디어 나타나는 Porrino의 모습.
카미노를 따라 들어서다보면 어느 성당의 뒤꽁무니가 보인다.

갈리시아 주 정부에서 후원하는 카미노 순례자의 상징.
스페인 땅에 들어서면서 알베르게나 인쇄물 등에서 많이 볼 수 있었다.

깔끔한 현대식 건물이었던 Porrino 알베르게

Porrino는 기차길을 끼고 있는 작은 도시이다. 원래 계획대로 였다면 Porrino는 Tui에서 Redondela까지 가는 중에 잠시 스쳐지나가는 도시였겠지만, 이렇게 하루 묵어가게 되었다. 이곳 스페인 땅에 들어서면서 부터 알베르게는 3유로를 받는다. 갈리시아 주 정부의 정책인 듯하다.

잠시 내 관심사 중 하나인 언어에 대해 이야기 하자면, Porrino의 n위에는 ~표시가 있다. 발음은 대략 포기뇨와 포리뇨의 중간쯤. 그르르~ 가래 끓는 소리를 내면 된다. 나도 처음부터 이 발음을 알고 간건 아니고, 길을 걸으면서 틈틈히 마리아나에게 포르투갈어와 스페인어를 배우다 알게 되었다. 마리아나는 포르투갈인이지만 스페인어를 유창하게 하며, 본인은 잘 못한다지만 영어도 꽤 잘 한다. 처음에 포르투갈 땅을 걷고 있을때는 일행중 유일하게 포르투갈어를 하는 마리아나에게 많이 물어보다 습관이 붙어서 스페인 땅에 들어서도 많이 물어보게 되었다. 물론 일행중 스페인어가 모국어인 토마스가 있지만 아쉽게도 영어를 못하니 내가 질문할 방법이 없다.

짐을 풀고 Bocateria에 가서 점심을 먹었다. 스페인식 샌드위치인 보카디요를 파는 곳이라 Bocateria이다. Chorizo criollo completo란 이름이 붙은 보카디요. 물론 샌드위치만 먹었을리 없다. 맥주로 시작해서 아구아르디엔테로 끝맺는다. 아구아르디엔테(Aguardiente)는 포르투갈이나 스페인에 흔한 독주로, 우리나라에 소주, 러시아에 보드카가 있다면 카미노에는 아구아르디엔테가 있다(...는 말이 객관성이 없을지는 몰라도 최소한 나의 카미노 추억에는 그렇게 입력되어 있다.^^) 길고 길었던 어제와 달리 걷기를 일찍 끝내고 대낮부터 알딸딸하게 취하니 기분 좋다. 물론 순례자들이 다 이렇게 술을 마시는 것은 아니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나와 일행은 아주 잘 맞는 찰떡 궁합이었다. ^_^ 과연 내가 이 사람들을 만나지 않았다면 아구아르디엔테라는 말을 알게 되었을까 싶기도 하다.


커다란 빵 사이에 야채와 햄, 치즈 등을 넣은 보카디요.
뒤로 보이는 맥주 잔은 일행이 음식 사진 찍는 나를 위해 모아준 것.^^

피자도 시켜서 나누어 먹었다

소줏잔처럼 작은 잔에 투명한 아구아르디엔테를 따라 마신다
주로 식사 후 디저트 삼아 마시는 듯.


Porrino 시내의 어느 성당. 조그마한 도시에도 곳곳에 멋진 성당이 많다.


점심을 먹고 일행은 시내 구경을 더 하겠다고 하는데, 나는 어제 무리한 탓인지 좀 쉬고 싶어서 알베르게에 들어왔다. 알베르게에서 봉사자 아주머니와 이야기를 나누는데 이 분, 내게 스페인어를 가르쳐 주겠다며 소년, 소녀, 아저씨, 아줌마, 신발, 티셔츠, 바지, 치마 등등 여러가지 단어를 알려준다. 그러면서 poco a poco 라고 한다. 스페인어를 거의 모르지만 악보에서 많이 보던 (아마도 이탈리아 말이였을) 조금씩 조금씩 이라는 뜻으로 알아 듣는다. 스페인어도 배우고, 일기도 쓰고 방명록에도 글을 끄적거리고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보니 저녁 시간이 됐다.

다시 마을로 나와 돌아다니다 일단 아무 길가 카페에 앉아 맥주를 마신다. 이곳 풍습에 식사 전 음료 마시는 것이 흔한 일인 듯 하다. 이렇게 카페에서 뭔가 마시고 식당으로 옮기기도 하고, 바로 식당을 간 경우에도 일단 음료 주문을 해 놓고 마시면서 무슨 음식을 먹을 지 메뉴판을 뒤적이니 말이다. 여튼 다시 Pasa a Nivel이란 이름이 붙은 식당에 들어갔다.

한국 떠난지 어언 일주일이 넘었는데 그간 한번도 생각나지 않던 쌀밥이 생각난다. 평소 쌀밥에 김치 같은거 며칠 안먹어도 전혀 상관 없다고 생각했던 내가 이런 생각이 들다니, 아마 어제 이후로 몸이 힘들어서 익숙한 음식이 더 생각났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주문한 것은 ensaladas arroz y pasta  - 쌀과 파스타가 들어간 샐러드. 샐러드라고 하면 채소가 주라고 생각하는 나에게 쌀밥과 파스타가 들어가 식사를 삼을 수 있는 샐러드는 좀 낯설지만, 옆에 있는 채식주의자 마리아나가 종종 샐러드로 식사를 때우는 걸 보고 따라해 봤다. 비빔밥 보다도 더 큰 샐러드 밥. 식초, 올리브, 그외 야채가 많이 들어가 상큼하면서도 괜찮다. 힘도 갑자기 나는 느낌. 단지 밥이 우리식 밥이 아니라 다소 퍼석한 느낌.

맥주 몇잔에 저녁 식사하고 다시 아구아르디엔테 까지. 그렇게 먹고 마시고 이야기하다 늦게까지 있었더니 어느덧 11시가 넘었다. 물론 시차 탓도 있다. 포르투갈에 있었으면 아직 밤10시인데 스페인은 시차가 있어 11시가 되어 버린 것이다. 여기 알베르게는 11시 문을 닫는데 하마터면 알베르게에 못 들어갈 뻔 했다. 다행히 우리 일행이 걷다가 말을 튼 스페인 아저씨 앙헬이 우리가 문열어 달라고 소리치는 걸 듣고 안에서 문을 열어주어 노숙은 면했다. 정말 하마터면 알베르게 현관문 앞에서 오들오들 떨며 잠들 뻔 했다.

저녁 식사 먹기 전에 San Miguel 생맥주 한잔.
필리핀에 있는 San Miguel과는 다른 브랜드일까? 아직도 의문이다.

갈리시아 땅에 들어온 만큼 갈리시아 맥주도 마셔봐야 한다. ㅎㅎ
옆테이블에서 마시는 Estrella Galicia에 내가 관심을 보이자
일행이 한잔 더 하자며 에스뜨레야 갈리시아 병맥주를 시켜 마셨다.

파스터와 쌀밥이 들어간 샐러드.
한국에서 알고있던 샐러드와 달리,  말하자면 비빔밥이라든지, 회 대신 햄이 들어간 회덮밥 정도 되는 느낌이다.
한끼 식사로도 손색없었다

식사를 마치고 디저트로 마신 아구아르디엔테.
무언가 식물이 들어가 녹색 빛과 상큼한 향이 난다.



[8/8(금) 쓴 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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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식사 2유로
가게: 물1.5L+초콜렛+바나나 1.25유로
자판기 이온음료 1유로
알베르게 3유로
점심: 맥주, 아구아르디엔테, 샌드위치 10유로
슈퍼: 요구르트 0.25유로, 물 1.5L 0.29유로
저녁 전 맥주 두잔 3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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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 25.79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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